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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규 교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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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시론] 사우디를 등에 업은 중·러

관리자|2024.01.22|조회 64
원본기사 링크: https://www.sedaily.com/NewsView/2D46KXYGHL

 


 

최근 고유가 인플레이션과 국제유가 급변동의 귀환은 저탄소 추세와 석유 종말 전망을 무색하게 할 정도다. 국제유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에도 수급 요인으로 이미 오르기 시작했다. 2022년 3월 실제 전쟁이 시작되자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았다. 2023년 3월 전쟁 이전 수준인 80달러대로 내려갔던 국제유가는 같은 해 9월 95달러로 13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달했다. 100달러 진입을 바라보던 국제유가는 4개월 만인 11월 다시 70달러대로 하락했다.

이러한 단기간 국제유가의 급등락으로 관련국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국제유가를 80~90달러로 유지하기 위해 감산을 추진하는 반면 미국은 40~50달러로 내리기 위해 셰일오일 생산을 늘리고 사우디 정부에 생산량 증대 압력을 넣기도 한다.

엇갈리는 국가 이해관계 사이에서 사우디의 역할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우디는 국제유가를 끌어올림으로써 러시아의 전쟁 능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러시아는 석유 수출로 전쟁 이전보다 더 많은 재정수입을 올리고 있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석유 협력에 힘을 싣고 있는 국가가 중국이다. 중국은 러시아 우랄산 석유를 브렌트유 가격보다 높게 구매하고 있다. 사우디와 인권 문제 등으로 대립각을 세우며 출범한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고유가 인플레이션으로 정권 재창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사우디는 2022년 7월 자국을 방문해 생산량 확대를 요청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요구를 일축하는 대신 2022년 12월과 2023년 3월 각각 자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석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 러시아와 러시아산 석유·천연가스의 위안화 결제에 합의했다. 중국·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러 간 페트로 위안화 동맹을 통해 페트로 달러 체제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경제 전쟁도 동시에 수행 중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달러가 기축통화일 때 가능하며 달러 기축통화는 미국의 석유 패권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위태롭던 1971년 달러의 금 불태환을 선언한 닉슨 쇼크 3년 후 미국은 사우디에 석유의 달러 결제를 강요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사수할 수 있었다. 1974년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를 방문해 파드 왕세자와 ‘워싱턴·리야드 밀약’으로 불리는 비밀 협약을 맺었다. 사우디는 모든 국가에 대한 석유 판매를 달러로 하겠다고 약속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사우디 왕가의 보호와 국가 안보를 책임지기로 했다.


옛 소련은 1980년대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권의 고금리 정책으로 대폭 하락한 석유 가격 때문에 재정난에 빠져 결국 체제가 붕괴됐다.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소련의 붕괴 원인에 대해 “사우디를 너무 몰랐다”고 후회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중 패권 경쟁이 매우 중요한 단계에 진입했음을 말해준다. 중동이 다시 들썩이고 사우디의 움직임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과거 사우디와의 동맹을 통해 석유 거래와 달러 체제를 통제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우디를 등에 업고 미국의 석유 거래와 달러 체제를 어느 정도까지 흠집 낼지 주목된다.

 


김연규 교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 한양에너지환경연구원장